강강술래와 놀이문화 공동체_한국의 전통놀이와 공동체 의식






다음 글은 2023년 11월 23일 작성_2026년 9월 15일 수정.보완
(저는 강강술래를 단순한 전통놀이가 아니라 ‘놀이기반 공동체교육 모델로 제시합니다. 강강술래를 협력적 사회 시스템의 프로토타입으로 재해석한 공동체 교육모델 제안서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놀이 형태(구조)가 경쟁적이면 → 경쟁이 강화되고
놀이 형태(구조)가 협력형이면 → 협력이 강화된다.
강강술래는 협력을 강제하지 않지만, 협력하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는 구조입니다. 강강술래는: 무임승차가 불가능합니다. 협력하지 않으면 흐름이 깨집니다. 강강술래는 음악+ 리듬+ 반복+ 협동을 통해 집단 동조와 감정 공유를 촉진합니다. 강강술래는 집단 협력 알고리즘과 닮아 있습니다.
따라서 공동체는 같은 목표가 아니라 같은 리듬을 공유하는 집단입니다. 목표는 달라도 리듬이 맞으면 공동체가 유지됩니다. 공동체는 ‘도덕’도 중요하지만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구조에서는 “혼자 잘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집단과 위상이 맞아야 유지됩니다. 이게 현대 조직이 놓치고 있는 지점입니다.)​

강강술래 놀이가 좋은 7가지

강강술래는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놀이로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으며 2009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다. 강강술래를 한다는 건 한국의 전통문화를 향유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귀중한 문화를 지키고 보존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놀자학교는 전래놀이 연수과정에서 최초로 강강술래를 도입하고 손잡고 노는 놀이인 공동체놀이를 중심으로 실시해왔는데 공동체놀이는 놀자학교의 정체성이자 지향하는 방향성이다.

강강술래를 현장 놀이활동에서 활용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겁을 먹고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강강술래가 노래와 춤 동작으로 구성된 종합예술적인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나는 노래를 못해”라든가 “나는 춤을 출 수가 없어”라며 노래나 춤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이 중 강강술래는 가장 쉽고 가장 빨리 익힐 수 있는 놀이이다. 5살 정도의 유치원 아이들도 단 5분이면 강강술래 놀이를 함께 할 수 있다. 그건 유아들이 ‘강강술래’라는 4음절의 노래만 할 수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손을 잡고 발걸음을 떼서 따라 걸을 수 있으면 된다. 그게 바로 강강술래다. 용기를 내서 시도해 보길 바란다. 해보는 거와 시도도 안 해본 거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크다. ​


우선 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자장자장 우리아가’ 노래를 알 것이다. 한국의 모든 노래(민요·전래동요)는 옛 할머니들이 부르던 자장가로부터 시작되었다. 자장가가 아리랑이 되고 자장가가 나무타령이 되었으며 자장가로부터 ‘강강술래’ 노래가 탄생되었다. 진도아리랑과 밀양아리랑처럼 지역 말투에 따라 달리 부를 뿐이다. 경상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가 같은 뜻의 말을 억양이나 말투가 다르게 표현되는 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전라도 지방의 강강술래를 경상도 지방에선 월월이청청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노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음 춤_무용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강강술래의 기본 구조는 동그랗게 손을 잡고 걷거나 뛰면서 노는 놀이이다. 이걸 무용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손잡고 노래(_구령)에 맞춰 걷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것이 강강술래의 ‘모든 것’이다. 혹시 무대에서 강강술래 공연하는 걸 보고 “저렇게 하기엔 너무 어려워” 하고 겁을 먹은 건 아닌지 되돌아보자. 정월대보름이나 한가위 때 마을마다에서 놀던 강강술래가 공연물로 등장한 건 우리나라의 민속문화 제도 때문이다. 진도나 해남 지역에서 강강술래를 소위 ‘민속문화재’로 등재될 수 있도록 무용화하고 남생이 놀이나 손치기발치기 놀이 등을 삽입하여 다채롭게 연출하면서 오늘날의 강강술래 공연물이 된 것이다. 우리가 현장에서 활용하고자 하는 놀이는 무대의 강강술래 공연물이 아니라 마당에서 아이들이 손잡고 놀던 단순하고도 쉬운 본래 의미의 ‘강강술래’이다. ​


초등학교 2-2 교과서에 소개되어 있는 강강술래를 학교에서 배운다

【왜 강강술래 놀이인가】

2003년 7차 교육과정을 통해 초중고 교과서가 대폭 개정되었는데,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전래놀이나 전통놀이가 많이 들어가 있으며 가장 많이 바뀐 교과서는 음악 책이다. 기존 서양음악 중심의 내용에서 국악·전래동요 등이 40% 정도 들어갈 정도로 큰 변화가 이뤄졌다. 교육부에서는 “우리 고유의 전통음악이 시대의 변천과 함께 점차적으로 현대를 사는 우리의 정서에도 깊은 영향을 주는 보편적인 음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며 전통음악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 아이들은 기성세대들이 배우지 못했던 굿거리장단이나 시김새를 배우고 있다. 기성세대들이 대대로 구전되어 오던 우리 노래를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문화라고 외면하며 서양문화를 받아들인 결과 ‘남생아 놀아라’ 노래를 아이들은 부르는데 놀이강사들은 모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지금 젊은이들은 퓨전 전통음악인 ‘범 내려온다’에 열광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무당들이 굿할 때 부르던 ‘영정거리’를 따라 부르고 있다. 이 퓨전국악은 해외에서까지 뜨거운 반응을 보이며 한국의 특수한 음악이 아닌 ‘보편적인 음악’이 되고 있다.​

초등학교 음악 책에는 강강술래와 관련된 노래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교사들은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에서 전통음악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서양 악보대로 가르치고 수행평가도 그런 차원에서 이뤄진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이들에게 노래는 놀이로 경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 노래는 놀이로 행해져 왔으며 삶과 놀이는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놀이와 노래는 말의 뿌리인 어간이 같은 “놀”에서 비롯되었다. 즉, 노래와 놀이는 엄마(모태)가 같은 한 형제인 것이다. 「한·일 음악 교과서의 전래동요와 와라베우타 비교 연구」(강혜인/2011)를 보면 우리나라에선 “전래동요를 ‘놀면서’ 부르는 놀이노래로 인식하기보다는 ‘꼼꼼하게’ 학습해야 할 제재곡으로 다루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전래동요는 놀이노래이다. 전래동요 수업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놀이에 몰두하며, 그 가운데 친구들과 친근감을 느끼고 화합하며 음악과 놀이의 즐거움을 느끼는 데 있다. 그러나 한국 교과서에는 전래동요 수업을 ‘대문열기 노래를 불러봅시다’ ‘실구대소리를 불러봅시다’로 시작하고 있다. 일본 교과서의 와라베우타 수업은 ‘일본의 놀이노래 오짜라까를 부르며 놀기’, ‘피었네피었네를 부르며 연꽃이 되어서 놀기’, ‘갱고츠산의 너구리의 가사에 따른 손유희를 하면서 놀기’로 명시하고 있다. 즉, 한국은 전래동요를 일반 동요수업과 같은 방법으로 가르치지만, 일본은 처음부터 놀이노래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런 점은 배워야 한다.​

필자는 강강술래를 학교 현장에 적용해왔는데 놀이 수업이 아닌 놀이화하여 재미와 효과에서 기대 이상이었다. 그래서 가장 쉽게 놀 수 있고 가장 자연스럽게 손잡기가 가능한 놀이 현장에 강강술래를 적용할 것을 권유하며, 강강술래의 좋은 점을 7가지로 정리해 본다. ​

1. 강강술래는 의사소통의 기본구조를 갖고 있다.
의사소통의 최초 행위는 ‘만지기’이다. 갓 태어난 아이는 엄마와의 피부 접촉(만지기)을 통해 신체가 성장하며 엄마의 따뜻한 느낌이 뇌에서 시냅스가 형성되며 최초의 ‘생각’이란 것이 생긴다. 아이는 엄마와의 ‘눈 맞추기’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존재를 느끼며 심리적 안정감을 갖게 된다. 아이는 엄마와 까꿍 놀이를 주고받으며 ‘순서 주고받기’를 자연스럽게 익힌다. 강강술래는 서로 노래를 주고받으며 몸동작(춤)을 하며 노는 완벽한 ‘의사소통’ 놀이이다. 사람과 친해지고 신뢰가 생기는 건 어떤 이성적인 판단이나 합리적인 생각보다 ‘접촉’이 우선한다는 건 과학적 사실로 증명되었다. 덴마크의 ‘접촉수업_contact class’에서는 ‘신뢰감은 손잡고 몸을 부딪히며 놀 때 분비되는 옥시토신이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피부 접촉’이 될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을 ‘도덕적 분자’라고 강조한다. 최근 잔인하고 끔찍한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자들이 한 번이라도 따뜻한 손을 잡아봤다면 그토록 짐승만도 못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2. 강강술래는 공감 능력을 키워준다.
강강술래는 노래를 선창하면 그에 맞춰 ‘강강술래’를 후창하며 강사와 놀이자 또는 놀이자와 놀이자 간 서로 주고받으며 노는 놀이이다. 이렇게 놀면서 강사와 어린이들에게는 몸과 신경의 동기화가 이뤄져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때 ‘공감’이라는 감정과 정서가 일어난다. 즉, 공감은 일방적이 아니라 반드시 상호작용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을 좀 어려운 용어로 ‘간주관성’라고 하는데 ‘시선 공유하기’나 ‘함께 보기’로 이해하면 되겠다. 아기는 생후 9개월이 되면 엄마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을 알아챈다. 그러나 지능은 아이보다 높지만 공감력이 없는 침팬지는 손가락을 쳐다본다. 서로 간의 협력적 의사소통에서 발생한 공감 능력의 차이이다. 아이는 엄마가 칭찬하는지 아니면 야단치는지 엄마의 반응을 참조하여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결정한다. 강강술래에서 놀이 이끔이의 반응(_의도)을 참조하여 놀이자들이 공동으로 행동(놀이)을 할 수 있는 건 공감 능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공감 능력은 ‘상대 관점에서 보기’인데 인간은 4살이 되면 타인의 생각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시작한다. 즉,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타인의 관점에서 자신을 볼 수 있는 ‘타인 조망 능력’을 강강술래 놀이를 통해 키울 수 있다. 인간은 이렇게 다른 사람의 정서표현을 조율할 수 있는 ‘거울뉴런’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연대감이 강한 침팬지 집단에서도 이런 공감 능력이 관찰된 적이 있었는데 2008년 도로시라는 침팬지가 40살 나이로 죽어 장례를 치를 때 주변 동료들이 서럽게 울부짖으며 마지막을 배웅한 장면이 연출되었던 사례가 있다. 자칫 짐승만도 못한 인두겁이 되지 않게 하려면 어린 시절 ‘손잡고 같이 놀아야’ 한다.​

3. 강강술래는 공평하고 평등하다.
회의할 때 둥근 탁자를 이용하는 건 누구랄 것 없이 공평하고 평등하다는 걸 느끼게 하여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얘기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이다. 레크리에이션이나 게임에서 1:100 구조나 50:50 구조는 게임 법칙을 따르는 경쟁, 대결 구조다. 강강술래에서는 어린이든 교사든 남녀노소 불문하고 똑같이 동그랗게 손을 잡고 노는,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구조다. 원형으로 손을 잡았을 때는 잘난 자와 못난 자가 없으며 모두가 똑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원형 탁자와 강강술래처럼, 보여지는 모습이 중요한 건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은 인간은 평등하다고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렇게 ‘보여지는’ 놀이를 통해 평등성을 몸으로 습득해 가는 것이다. 또한 서로서로가 마주 보고 있기 때문에 행동을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그들의 표정과 행동(율동)에 직접 반응할 수 있다. 놀이자들은 또래의 행동을 따라 함으로써 서로의 마음을 열고 주고받으며 만남과 소통의 상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손잡기를 꺼리는 아이가 있으면 누군가 다가가 손을 잡아주었을 때 그 아이는 비로소 사람의 따뜻한 손길을 느낄 것이다. 놀이를 할 때는 모두가 손을 잡아야 한다는 공동체의 암묵적인 규칙이 스며들며 그 아이는 손잡는 두려움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 참고로 어떤 아이가 손잡기를 거부하거나 두려워하는 건 그 아이에게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방어기제’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부모나 보호자로부터 버림받았거나 누군가로부터 공격_폭력을 당했을 확률이 많다. 그 아이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나(강사)나 친구들이 헤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게끔 해야 한다. 강강술래를 통해 손잡는 게 일상화되고 습관화되면 그 아이는 “스킨십(손잡기)이 있을 때마다 좋은(즐거운) 일이 일어난다”는 경험을 통해 차차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세나개’에서 이런 사례가 많이 관찰된다)​

4. 강강술래는 학습능력과 협동심을 향상시킨다.
음악(노래)의 다양한 리듬과 박자는 정서지능(EQ)을 발달시키고 언어능력, 기억력, 집중력, 창조력, 인내심, 협동심이 보다 빨리 계발된다는 건 연구를 통해 밝혀진 진실이다. 한 예로 미국 명문대에 수석 입학한 한 학생에서 비결을 물었더니 아주 어릴 적부터 늘 음악을 듣고 다양한 악기를 많이 배웠다고 했다. 또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프란시스 로셔 박사가 만 3~5세 아동들을 대상으로 음악과 좌뇌 발달의 관계를 밝히기 위한 실험을 진행한 결과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k488'를 들려준 후 문제를 풀도록 한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문제 해결력이 35%나 향상되었다는 실험도 있다. 음악은 그 자체만으로 학습과 성장을 촉진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노래에 맞춰 걷고 뛰며 손뼉치기나 춤추기 등 몸놀이를 결합하면 효과는 놀랍게 나타난다. 한편, 강강술래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리듬(장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복’은 사람에게 안정감을 준다. 예를 들어 ‘하루’는 밤이 가고 아침, 점심, 저녁이 반복적으로 지속된다. 이렇게 반복되는 리듬이 우리 몸속에는 생체리듬으로 새겨져 그에 맞춰 안정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복은 똑같은 반복이 아니라 때로는 빨라지고 때로는 느려지기도 하는데 놀이를 통해 리듬을 타면서 하루 일과나 사계절에 적응하듯이 스스로를 조절,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장단에 맞춰 놀 수 있다는 건 환경에 잘 적응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협동이 잘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다. ​

5. 강강술래는 그 어떤 놀이보다 호기심과 재미를 준다.
인간은 보통 언어로 말할 때보다는 선율적이고 리드미컬하게 말(노래) 할 때 훨씬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상대의 의도를 빨리 알아챈다. 노래(음악)는 의사소통의 도구이자 감정을 자극하고 인간 행동을 유발하는 역할을 한다. 박자와 리듬에 맞춰 함께 노래하고 신체를 움직이면 목소리와 행동뿐만 아니라 감정도 일치되고 힘이 강화된다. 각종 종교의식이나 경기를 응원할 때 노래가 빠지지 않는 이유이다. 인간에게 음악은 타고난 본성이다. 인간은 생후 18개월이면 고정박에 정확히 반응하며 선율(박자)을 흥얼거릴 수 있으며 선율의 진행 방향을 인지하여 표현할 수 있다. 즉, 강강술래는 생후 18개월이 지나면 노래를 할 수가 있고 ‘상대 관점에서 보기’가 가능해지는 4살이 되면 손잡고 놀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노래 부르기는 율동과 함께 구성되어 신체 표현이 수반될 때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즐거움을 표현한다. 아이들에게 음악적 경험의 대부분은 신체표현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이런 놀이는 자신의 존재를 가치 있고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도움을 주며 진짜로서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영어나 수학 등 조기교육은 아이에게 독이 되지만 놀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유아기 때 변연계인 감성뇌가 충분히 발달되어야 성장하여 인지능력(공부머리=공부뇌)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가 튼튼하게 형성된다. 조기교육은 놀이 자체여야 한다. ​

6. 강강술래는 닫힌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
2006년 광주MBC에서 강강술래가 치유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실험을 했는데 암환자는 우울증을 극복하고 회복력이 현저하게 좋아졌으며, 자폐 어린이는 닫힌 정서가 살아나면서 마음을 열고 친구들과 즐겁게 놀이에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역만리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다문화 엄마들은 강강술래를 통해 사회활동에서 자신감을 갖고 가정에서도 훨씬 화목해졌다는 실험이었다. 나의 관심이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상대방의 관심이 나에게 전달되어 오는 사회적 지지망 또는 안식처가 ‘강강술래’라는 형태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강강술래라는 틀 안에 들어가 손을 잡는 순간 내가 격리되었거나 따돌림당한 자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느낌은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여 만든 강강술래는 아픈 몸과 마음을 보듬어주는 치유 효과가 있다. 특히 한국인은 ‘관계성’을 중시하는 문화 유전자를 타고났는데 ‘우리’라는 틀 속에 내가 들어와 있다는 것은 엄청난 안도감을 제공해 준다. ‘우리’ 안에서 기쁨은 배가 되고 ‘우리’ 안에서 슬픔은 절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우리’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쓰는 나라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

강강술래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다

7. 강강술래는 오래된 미래이자 인류의 자산이다.
강강술래는 모든 예술의 태반이라 할 수 있는 노래와 춤, 놀이가 미분화된 건강한 원시성을 갖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간은 분화되고 개별화되어 공동체를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최첨단 과학기술 혁명으로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면서 인류는 유사 이래 가장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강강술래는 뿔뿔이 흩어지고 파편화된 인간들이 울타리를 만들어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하는 둥지 역할을 한다.

강강술래는 동그란 원형이라는 형태는 같지만 노는 건 제각기 다르다. 노래를 바꿔 부르기도 하고 몸동작을 재밌게 혹은 진지한 의식처럼 하기도 한다. 담양 지역에서는 강강술래를 광광술래라고 부르며 신안 비금도에선 염전의 수차놀이를 신체동작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경상도에선 월월이청청을 노래하며 달넘기를 하고 실꾸리를 감는 놀이를 한다. 강강술래는 21세기에 요구되는 무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창조 구조다. ​


놀자학교_문화혁명-공동체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간다.

놀자학교는 한국문화의 정수인 공동체 문화의 재발견을 통해 우리 공동체를 보다 따뜻하고 좀 더 즐겁게 만들기 위해 활동해온 지 30여 년이 되었다. 영어로 공동체를 의미하는 커뮤니티(_community)는 ‘함께’를 의미하는 com과 ‘선물’을 뜻하는 munus에서 온 말이다. 공동체의 원리는 곧 ‘(선물)주고받기’라는 것이다. 강강술래에서 노래를 서로 주고받는 원리와 똑같다. 놀자학교에서는 이런 공동체_놀이를 통해 보다 친해지고 재화와 서비스의 주고받기인 기부_후원금 제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인격도 함께 오고 가게 하려고 한다. ​

【북아메리카 인디언(치누크)들의 증여 놀이】
『증여론』을 쓴 마르셀 모스는 증여 및 교환의 체계는 호혜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자발적이며 의무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다양한 민족지적 사례들을 비교하는데 특히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나타나는 교환과 증여의 형태들을 분석한다. 그러나 그는 원시사회만 한정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로마인, 힌두인, 유럽인들에게서 행해지는 교환의 관습도 설명하면서, 그는 주어야 할 의무, 받아야 할 의무, 되돌려주어야 할 의무를 수행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사회를 유지시키고 결속시키는 중요한 힘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체계를 "전체적인 급부체계"라고도 명명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사례가 '포틀래치'다. 포틀래치는 출생이나 혼인 등 대표적인 통과의례가 행해질 때라든가 명예를 되찾고자 할 때, 위계질서를 재확립하고자 할 때 성대한 연희를 개최하고 많은 예물을 나누어 주는 일종의 증여 축제다. 증여는 인간의 중요한 본성 중 하나다. 여러분도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줌으로써 행복감을 느낄 때가 많았을 것이다.​

모스는 현대사회에도 이러한 증여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으며,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사회보장제도는 일종의 집단적 도덕으로서 국가와 사회는 개인의 권리의식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증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후한 인심'이고, 주는 것이 이로운 것이며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다시 부활되어야 한다. 이것은 결국 '고귀한 지출'로 연결되어 부유한 사람들의 의무적이고 자발적인 지출을 강조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이런 전통에서 유래된 것으로 높은 사회적 신분이나 재력가는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러분들이 이런 마음을 품고 학교나 놀이 현장에서 활동을 한다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더불어’ 놀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정신이 아이들의 가슴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

【놀자학교의 GIVE_후원금 제도】
우리 전통에서도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품앗이, 울력, 두레, 십시일반 등의 이름으로 협동하고 협력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근이 들면 부자들은 곳간을 열어 인심을 베풀었다. 경주의 최부자집은 12대에 걸쳐 나그네나 거지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고 밥을 먹여주는 선행을 하였으며 김만덕은 제주도민들이 계속되는 재해로 기근에 시달리자 전 재산을 털어 사람들을 살려냈다.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인 셈이다.

필자는 우리 스스로의 공동체인 놀자학교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백일조’를 제안한 바 있었다. 내 수입의 1/100을 기부금으로 내자는 것이다. 화폐가 발달되지 않은 전통사회에서는 주로 노동력을 주고_받는 품앗이를 하였다면 상품화 시대인 현대엔 화폐_상품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이렇게 낸 돈은 놀자학교의 지속.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회원들 교양을 위한 강좌와 실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실과교육에 투자된다. ‘백일조’를 넘어 보다 많은 기부_후원금이 모금되면 행사나 특강 등 하고 싶은 일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놀자학교와 여러분들 사이에 주고받기(Give & Take)를 끊임없이 반복하면 서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놀자학교 본부를 구성하여 사업 실행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며 지역이나 분교에 교부금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GIVE_후원금 제도는 놀이조차 가격으로 매겨진 상품화에서 벗어나 더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해나가는 고도의 시스템이다. 놀자학교의 GIVE_후원금 제도는 놀이를 ‘공공재’로 지키기 위한 실천활동이자 놀이를 ‘공공재화’ 하기 위한 시도이다. 유니세프나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기부금을 내고 있는 분도 있을 것이다. 놀자학교의 GIVE_후원금 제도는 유니세프 류의 일방적인 측은지심도 좋지만 나와 우리(공동체)를 위해 기부를 하고 결국 우리가 보상_혜택받을 수 있는 쌍방향 주고받기 제도이다. 이런 가치를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기업가나 재력가가 놀자학교에 기부하겠다면 법적으로 기부받을 수 있는 사단법인이나 문화재단을 만들 것이다. '포틀래치'처럼 주는 데서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는 공동체라면 그거야말로 세상 누구 부럽지 않은 문화혁명인 것이다.

“놀자학교는 오래된 미래가치를 추구한다”​

【밥 한번 먹자 & 그리고 회복적 정의】
기부_후원금 제도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으면 모든 행사나 강의 비용은 후원금으로 충당될 것이다. 그러나 꼭 필요한 사업이나 강의를 해야 하는데 모아진 돈이 부족할 경우 과도기적으로 교육비를 책정하여 진행한다. 가격을 매기기 어려운, 돈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사업이라면 응당 그 가치를 보존하고 살려야 할 것이다. 교실놀이나 학교놀이처럼 소위 근대화된 체육놀이가 성행하는데도 굳이 전래놀이나 전통놀이를 익혀서 아이들과 그런 놀이활동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서양에서 도입된 체육놀이 이상의 재미와 무형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놀이는 시대에 뒤떨어진 활동이 아닌 가장 가치있는 놀이활동이다. 놀자학교에서 시행하는 GIVE_후원금 제도인 주고받기_품앗이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시대착오적인 게 아닌 공동체를 복원하여 너와 내가 그리고 우리가 행복해지자는 가장 가치 있는 문화혁명이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파괴되어 개개인으로 파편화되면서 성행하게 된 일본의 와리깡(割り勘)이나 더치페이(Dutch pay)는 N분의 1 개념으로 철저히 내가 먹은 만큼만 내는 겉보기엔 합리적인 계산법이다. 더 이상 만날 일이 없거나 ‘우리’가 아닐 때는 필자도 그렇게 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밥 한번 먹자”고 해놓고 더치페이하자고 하면 무척 당황스럽고 썰렁해질 것이다. 누군가에게 사주고 싶고 누군가에게 얻어먹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거 자체로 그 사람은 가치있는 사람이다. ‘밥(食) 한번 먹자(口)’고 하는 건 식구처럼 친해지고 싶다는 것이고 가족처럼 형이나 누나, 동생으로 가까워지고 싶다는 인사법이다. 주고받는 문화를 만들자는 건 우리가 잃어버린 ‘정(情)의로운 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혹시 내가 GIVE하면 나만 손해 보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를 한다. 그런 우려가 생기는 이유는 공동체의 신뢰가 언제나 지켜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뢰가 깨졌을 때 공동체는 어떻게 해야 할까? 놀이문화공동체는 그 답을 회복적 정의에서 찾아야 한다.

놀이문화공동체는 단순히 베풀기만 하는 공동체를 지향하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회복적 정의를 바탕으로 한 건강한 공동체이다.

처음에는 누구에게나 신뢰를 보내고 협력한다. 협력에는 더 큰 협력으로 응답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 책임을 회피하는 공동체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임은 응징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며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면 공동체는 다시 손을 내민다. 회복에는 다시 신뢰로 응답하는 것, 그것이 놀이문화공동체가 추구하는 회복적 정의이다.

공동체는 선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신뢰를 지키려는 원칙과, 잘못이 있을 때 그것을 바로잡고 다시 함께할 수 있는 회복의 문화가 있을 때 비로소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놀이문화공동체는 이러한 원칙 위에서 건강한 놀이문화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내가 즐겁지 않다면 그건 나의 놀이가 아니다】

"일은 억지로 할 수 있지만 놀이는 억지로 할 수 없다"_마크 트웨인

위 말은 놀이와 일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많은 공감을 얻은 말이다. 필자도 100% 공감한다. 좀 더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접근은 요한 하위징아나 로제 카이와 같은 학자에게 들을 수 있다. 하위징아의 ‘놀이는 생존 자체의 목적’이라는 말은 무목적성이라는 것이다. 그럼 인간은 왜 놀이를 하는가? 답은 ‘재미’있으니까 노는 것이다. 인간이 신체활동을 통해 에너지(생산물_돈)를 얻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소비하면서 노는 이유는 놀지 않으면 생존능력을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놀이 활동은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이다. 놀자학교의 문화혁명도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거 자체가 세기적 지구 위기에서 공생.공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사업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사업이다.

필자는 에마 골드먼이 말한 “만약 내가 춤출 수 없다면 그것은 나의 혁명이 아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래서 “만약 내가 즐겁지 않다면 그건 나의 놀이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재밌는 놀이이고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놀이라 하더라도 내가 참여하여 내가 즐겁지 않으면 그건 다른 사람의 놀이이지 내 놀이가 아닌 것이다. 여러분이 놀자학교의 놀이공동체에 흔쾌히 참여할 때 진정 ‘나의 혁명’이자 ‘나의 놀이’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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